[점프볼=김용호 기자] “선수로서 큰 삭감을 한 번에 받아들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종규가 팀 상황을 이해해줬기에, 나도 구단에 대우를 받을 수 있었다.”파워볼사이트

원주 DB는 지난 30일 KBL에 2020-2021시즌을 위한 국내선수 등록을 모두 마쳤다. 2019-2020시즌 정규리그 공동 1위에 올랐던 DB는 25억의 샐러리캡 중 99.12%를 소진하며 협상 결렬 없이 보수 교통정리도 완료했다. 남아있는 샐러리캡 2,200만원은 군 제대예정인 이우정에 대한 금액이다.홀짝게임

지난 5월 자유계약선수(FA) 시장에서도 바쁜 시간을 보냈던 DB는 기존 선수들의 이번 보수 협상에서도 많은 시선을 끌어모았다. 2017-2018시즌 정규리그 1위를 차지했을 때 MVP에 선정됐던 두경민이 상무 제대 후 처음으로 협상 테이블에 앉았기 때문.

결과부터 보면 두경민은 1억 6천만원에서 106.3%가 인상된 3억 3천만원에 사인을 했다. 팀 내에서는 김종규(7억 1천만원) 다음으로 2위이며, 리그 전체에서도 전주 KCC 송교창과 함께 공동 19위로 점프했다. 또한, 2019-2020시즌 정규리그 MVP였던 부산 KT 허훈과 더불어 두경민은 역대 정규리그 MVP들의 비FA 협상에서 최초로 100%를 초과한 인상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비시즌 훈련이 시작된 지 딱 한 달이 지난 시점. 두경민은 “가장 힘들게 체력 훈련을 하는 중이다. 사실 지금은 너무 힘들어서 몸 상태가 떨어진다고 느낄 정도다(웃음). 그래도 모든 선수들이 낙오 없이 훈련을 소화 중이라 분위기가 좋다”며 근황부터 전했다.

이어 화두가 된 보수 협상 결과에 대해서는 “내 가치가 충분히 담겨있는 금액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외부에서는 (허)훈이와 비교하는 시선도 있었지만, 개인적으로는 그 부분에는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팀과의 유대관계 속에서만 얘기를 나눴다”며 만족스러운 소감을 전했다.

2013-2014시즌 프로에 입성했던 두경민은 이상범 감독 체제 하에 에이스로서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팀원들도 인정하는 꾸준한 노력으로 이뤄낸 결과. 하지만, 두경민은 이번 보수 협상 결과에 있어서는 타인에 대한 고마움이 더 많다고 했다.동행복권파워볼

“모두가 알고 있듯 우리 팀의 샐러리캡 상황이 여유 있는 편은 아니지 않나. 그럼에도 나를 이만큼 대우해준 구단에 감사하다. 또, 이번에 보수 협상을 하면서 나보다 경험이 많은 (김)종규에게도 조언을 구했었는데, 종규가 양보한 부분도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선수 입장에서 한 번에 그렇게 큰 삭감을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종규도 우리 팀이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게 배려해줬다고 생각하고, 그 덕분에 나도 대우를 받을 수 있었다. 정말 고마운 부분이다.” 두경민의 말이다.

DB가 다시금 정상을 외치는 2020-2021시즌을 앞두고 두경민은 친구 김종규와 함께 보수로나 비중으로나 팀의 원투펀치를 이루게 됐다. 이미 지난 달 비시즌 훈련이 시작될 때부터 두경민이 보여 왔던 책임감이 더욱 짙어질 시기가 다가온 것.

“팀을 이끌어가야 하는 책임이 생긴 것 같다”며 고개를 끄덕인 두경민은 “연차로 보나, 팀에서의 위치로 보나 내가 리드를 해야 할 부분이 있다. 단순히 농구뿐만 아니라 많은 요소들을 생각해야 한다. 그런 책임감이 무겁긴 하지만, 종규라는 친구가 함께 있다는 게 정말 다행이고 편하다. 혼자서 이런 책임감을 느꼈다면 정말 힘들었을 거다”라며 친구와 함께할 앞날에 미소를 지었다.

보수 협상도 끝난 지금부터는 개막이 다가올 때까지 오로지 팀의 시즌 준비에만 집중하면 된다. 마지막으로 두경민은 “종규와 나의 꿈이 같기 때문에 서로 도우며 잘 나아갈 수 있을 것 같다. 또, (김)태홍이 형이라는 든든한 캡틴도 있지 않나. 형들한테 배운 걸로 동생들도 잘 이끌어보려 한다. 동생들도 너무 성실하게 잘 따라 와주는 중이다. 그 모습들이 너무 고맙다. 개막하기 전까지 농구는 물론 많은 부분에서 성숙해져서 팀이 단단해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다시금 파이팅을 외쳤다.

[OSEN=박준형 기자] 토론토 필립 오몽 /soul1014@osen.co.kr

[OSEN=이상학 기자] KBO리그에서 뛰고 싶어했던 ‘전직 빅리거’ 투수 필립 오몽(31)이 은퇴 후 농부로 변신했다. 

오몽은 지난해 11월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WBSC 프리미어12 예선에서 캐나다 대표팀 투수로 참가했다. C조 예선 쿠바전에서 선발로 나서 8이닝 2피안타 1볼넷 9탈삼진 무실점 호투로 승리투수가 되며 강한 인상을 남겼다. 

201cm 장신에서 내리 꽂는 150km 강속구와 떨어지는 스플리터가 돋보였다. 당시 경기 후 오몽은 “한국에서 뛸 생각도 있다. 기회가 된다면 뛰고 싶다”며 KBO리그 팀들에 어필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토론토 블루제이스와 마이너 계약을 맺고 미국으로 돌아간 오몽은 지난 2월 플로리다주 더니든에 차려진 토론토 캠프체 초청 선수로 참가했다. 시범경기에도 두 차례 구원등판했지만 3이닝 3피안타 1볼넷 5탈삼진 3실점 평균자책점 9.00을 기록했다. 

3월 중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메이저리그가 중단됐고, 오몽은 선수 생활을 접기로 했다. 만 31세 젊은 나이지만 농사일에 뛰어들었다. 지난 1일(이하 한국시간) 캐나다 ‘CBC’ 방송에서 오몽은 은퇴 후 농부로 전업한 사연을 알렸다. 

[OSEN=고척, 곽영래 기자]1회말 캐나다 필립 오몽이 역투하고 있다. /youngrae@osen.co.kr그는 “코로나19가 우리 도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봤다. 약혼자와 많은 이야기를 했고, 자연으로 돌아가 부정적인 것에서 벗어나기로 했다. 난 자연을 느끼고 싶다. 동물을 기르면서 채소와 과일 작물을 재배하는 것을 배우고 싶다. 야구는 삶의 일부이지만 자연은 영원히 존재할 것이다”고 밝혔다. 

물론 야구에 대한 사랑도 여전하다. 오몽은 “야구는 내게 있어 정말 대단했다. 내 인생에서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준 야구에 매우 감사하다. 야구를 통해 성공과 실패를 해보며 인생의 교훈을 얻었다. 야구한 것을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했다. 

이어 오몽은 “선수로서 야구는 그만두지만 야구를 멀리하진 않을 것이다. 내 경험을 가능한 많이 공유하며 성공을 위해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한 조언도 할 수 있다. 내가 야구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방법도 찾을 것이다”고 야구와의 끈을 놓지 않겠다고 했다. 

캐나다 출신 우완 투수 오몽은 지난 2007년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전체 11순위로 시애틀 매리너스에 지명된 유망주 출신이다. 만 18세에 96마일(약 154km) 강속구를 뿌렸지만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했다. 2012년 필라델피아 필리스에서 빅리그 데뷔한 뒤 2015년까지 4시즌 통산 46경기 1승6패2세이브 평균자책점 6.80의 성적을 냈다. 이후 미국 마이너리그와 캐나다 독립리그를 오가다 만 31세에 농부로 전업하며 은퇴했다. /waw@osen.co.kr

27일 부산 사직야구장에서 KBO리그 롯데와 삼성의 경기가 열렸다. 3회 삼성 이성곤이 1타점 적시타를 날렸다. 1루에서 손을 들어보이고 있는 이성곤. 부산=송정헌 기자 songs@sportschosun.com/2020.06.27/[대구=스포츠조선 정현석 기자]삼성 깜짝스타 이성곤(28)이 선수단에 피자를 쐈다.

지난 26일 사직 롯데전에서 기록한 데뷔 7년 만의 첫 홈런 기념 턱이다.

그런데 특이하다. 통상 피자는 동행중인 1군 선수단에만 돌린다.

하지만 이성곤은 퓨처스리그 선수단이 있는 경산까지 배달을 보냈다. 오히려 1군보다 더 많은 피자를 돌렸다. 1군 20판, 2군 30판이다.

사실 첫 홈런이나 첫 승을 거둔 선수가 피자 턱을 내는 건 통상적인 일이다. 하지만 2군까지 챙기는 선수는 거의 없다. 오랜 시간 2군에서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본 선수. 어느덧 서른을 바라보는 중참이 됐다. 아무리 잘 하려고 해도 마음 같지 않은 게 야구다. 군 복무 마치고 ‘어~’ 하다 보면 어느덧 서른 줄이다.

어느덧 스무살 약관 때 품었던 꿈은 희미해진다. 체념하고 희망을 잃는 순간 선수는 빛을 잃고 정체한다. 늦깎이 스타는 얼마든지 많다. 대표적인 야수가 바로 KT 유한준이다.

오랜 세월을 거름 삼아 약진을 시작한 이성곤. 그에게는 수치적 목표가 없다. 그저 오래 1군에 남아 최대한 많은 경기에 출전하는 것, 그것이 유일한 목표다. 홈런을 펑펑 날리고도 “수비를 가릴 처지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외야든 내야든 원하는 포지션에 좋은 플레이로 임하겠다. 팀이 원하는 것이 타격이기 대문에 능력 이하로 플레이 하지 않도록 매 순간 최선 다하겠다”고 말한다. 간절함이 뚝뚝 묻어난다.

그렇게 악착같이 살아남아 2군 선수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

남들 보다 늦게 건 시동, 더 우렁차게 달릴 참이다.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꿈 꾸는 어린 선수들에게 등대 같은 선수가 되고 싶은 꿈. 이성곤의 궁극적 목표다. 그 아름다운 진심이 경산행 피자에 담겼다.

하지만 이성곤은 내색하지 않았다. ‘2군에 왜 더 많은 피자를 보냈느냐’는 질문에 대한 그의 답변이 시크하다.

“선수가 더 많잖아요.”

출처=마우리치오 포체티노 인스타그램[스포츠조선 노주환 기자]토트넘 팬들은 아직도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감독(아르헨티나 출신)에 대해 깊은 애정을 갖고 있다. 그는 2019년 11월 중순, 14위까지 팀 성적이 곤두박질치자 성적부진의 책임을 지고 중도 퇴진했다. 그 직전 2018~2019시즌 토트넘을 유럽챔피언스리그 준우승까지 이끈 ‘젊은’ 명장은 토트넘 역사를 마감했다. 그리고 지금의 베테랑 조세 무리뉴 감독(포르투갈 출신)이 지휘봉을 넘겨받았다.

포체티노 감독은 향후 언젠가 다시 토트넘 사령탑으로 복귀하고 싶다고 자신의 심경을 밝혔다. 그는 “내가 토트넘을 떠난 날부터 내 꿈은 다시 돌아오는 것이고, 여기서 못단 이룬 꿈에 다시 도전하는 것이다. 우리는 EPL과 유럽챔피언스리그 우승에 근접했다. 물론 나는 계속 나아갈 것이고, 다음 프로젝트로 동기부여가 잘 돼 있다. 나는 토트넘으로 돌아갈 것이다. 왜냐하면 팬들이 너무 특별하기 때문이다. 5년 아니면 10년이 걸릴지 몰라도 죽기 전에 나는 토트넘을 다시 맡고 싶다”고 말했다고 풋볼런던이 2일 보도했다. 포체티노 감독은 현재 무직이며 유럽 빅클럽 하마평에 올라 았다. 뉴캐슬 벤피카 등 감독설이 돌고 있다.

최근 포체티노 감독의 아들 19세 윙어 마우리치오 포체티노가 토트넘과 연장계약을 체결했다. 아버지는 팀을 떠났지만 아들은 그대로 남았다. 포체티노 주니어도 인스타그램에 아버지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전 토트넘 감독과 나란히 찍은 사진과 함께 “새로운 시즌이 기대된다”고 적었다. 포체티노 감독은 토트넘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포체티노 주니어는 2017년 토트넘 아카데미에 입단했다. 18세팀을 거쳐 현재 23세이하 팀 소속이다. 아직은 1군에 데뷔하지 못했다.

풋볼런던은 떠났다가 다시 친정팀으로 돌아온 세계적인 명장을 소개했다. 지네딘 지단 감독은 레알 마드리드를 떠났다가 금방 다시 지휘봉을 잡았다. 무리뉴 감독도 첼시를 떠났다가 첼시로 5년 만에 돌아와 다시 EPL과 리그컵을 우승했다. 해리 레드냅 감독은 포츠머스에서 그랬고, 리버풀 사령탑 케니 달그리시도 그런 경험이 있다.

[스포탈코리아=영등포] 김현서 기자= 2006년 KBO리그 신인 역사상 최고 계약금 10억 원을 받고 KIA 타이거즈에 입단. 데뷔 첫 시즌 선발-불펜으로 보직을 바꿔가며 10승 8홀드 1세이브 달성. 이듬해 2007년부터는 마무리로 전향해 2년 연속 25세이브 이상을 기록하며 승승장구.

KIA 팬들을 누구보다도 설레게 했던 한기주(33)를 설명하는 문장들이다.

그러나 꽃길만 걸을 줄 알았던 그는 2008 베이징 올림픽을 기점으로 하락세를 타기 시작했다. 고질적인 부상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결국 수술과 재활을 반복하다 2018년 삼성 라이온즈 유니폼을 입으며 재기를 꿈꿨지만, 부상이 또다시 그의 앞길을 가로막으며 2019년 현역에서 은퇴했다. 완전한 재능을 다 꽃피우지 못한 비운의 야구천재 한기주를 만나봤다.

Q : 은퇴 후 근황이 궁금하다. 요즘 어떻게 지내나.

A : 지난해 말 은퇴 후, 5개월 정도 우신고등학교 야구부에서 투수코치로 있다가 올해 4월부터 야구 아카데미(87베이스볼 클라쓰)를 오픈하고 유소년들을 지도하고 있다.

Q : 야구 아카데미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A : 작년 4월부터 은퇴를 결심하면서 유소년들을 가르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수 시절에 내가 부족했던 부분들을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싶었고 레슨을 통해 도움을 주고 싶어 시작하게 됐다. 레슨할 때, 중점을 두는 부분은? 하체 쓰는 방법과 부상에 대해 조언을 많이 하고 있다.

Q : 프로에서 코치를 해보고 싶은 생각도 있나.

A : 불러주셔야 할 수 있지 않겠나?(웃음) 아직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에 집중하고 싶다.

Q : 화려한 고교 시절을 보냈다.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의 관심도 많이 받았는데 빅리그 도전에 대한 아쉬움은 없나.

A : 고교 시절에 주목을 많이 받았다. 국내 구단은 물론 메이저리그 구단까지. 당시 메이저리그에 진출하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한국에서 먼저 성공한 뒤에 가야겠다는 마음이 더 컸기 때문에 국내 구단을 선택했다. 아쉬움은 없나? 지금은 다 잊고 지내서 야구에 대한 미련은 없다.

Q : 현재 고교 특급 유망주 장재영 선수(18, 덕수고)와 비교되고 있는데 알고 있나. 본인이 기록한 리그 최고 신인 계약금을 깰 수 있을까.

A : 어떤 선수인지 들어 봤다. (고교 시절 구속을 비교해 봤을 때) 장재영 선수가 나보다 더 빠른 공을 던지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 최고 157km까지 던졌다는데? 와, 정말 훌륭한 선수라고 생각한다. 충분히 내 기록(리그 역대 최고 신인 계약금)을 깰 수 있을 것 같다. 섭섭하진 않을까? 기록은 언제든지 깨지라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빨리) 깼으면 좋겠다.

Q : 이제 프로 시절 이야기를 듣고 싶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나 순간은.

A : 기아에서 삼성으로 트레이드된 후 첫 광주 원정 경기에(2018년 3월 28일) 등판했을 때가 가장기억에 남는다. 어떻게 보면 기아는 제2의 인생을 열어준 구단이고 삼성은 또 나를 받아줬던 구단이었기 때문에 그 경기가 가장 생각나는 것 같다.

Q : 반면에 가장 아쉬웠거나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인가.

A : 은퇴하기 직전 시즌이 너무 아쉽다. 평생 야구를 하다가 (현역 마지막 시즌에) 등판 한 번 못 해보고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제일 아쉬운 부분으로 남는다.

Q : 팬들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아쉬운 순간으로 꼽는다. 당시 컨디션이 안 좋았나.

A : 올림픽을 보신 야구 팬들은 아시겠지만 욕을 많이 얻어먹었다. 몸 상태가 나쁘진 않았는데 밸런스 부분이 많이 무너져있었다. 베이징에 도착했을 때부터 안 좋다 보니 올림픽 무대에서 볼을 제대로 던질 수 없었다.

Q : 이어 ‘속꽉남’, ‘은하철도 한기주’, ‘불기주’ 별명도 얻었다. 들어봤다면 당시 기분은 어땠나. (*베이징 올림픽에서 평균자책점 99.9를 기록하자 야구팬들이 배일호의 노래 99.9에 빗대어 붙인 별명)

A : 다 들어봤다. 기분이 나쁘기보다는 그만큼 팬들이 관심을 가져주신다고 생각했다. 재미있는 별명이라고 생각한다.

Q : 또 다른 별명 ’10억 팔’이 늘 꼬리표로 따라다녔는데 부담되진 않았나.

A : 부담스러웠던 적이 많았다. (2009년 이후) 수술을 많이 하다 보니 예전에는 던질 수 있었던 공들을 제대로 못 던지게 되더라. 특히 어깨 수술 이후 강속구 자체를 던질 수가 없었다. 사람들은 ‘10억 팔’이라고 불렀지만, 내가 생각했을 때는 ‘10원짜리 팔’ 정도였던 것 같다.(웃음) 수술을 좀 더 일찍 했으면 어땠을까? 결과론이지만 아이들에게도 많이 얘기해주는 부분이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수술을 받으라고 얘기한다. 그래야 회복도 더 빠르고…

▶인터뷰는 2편으로 이어집니다.

사진, 영상= 스포탈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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